가상현실과 환각

                                   이원곤

  예를 들어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내용에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상현실이 아닌가”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주목을 끌고 있는 가상현실(VR)은 어디까지나 독자나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서 얻을 수 있는 현실감’을 핵심으로 한다. 1930년대의 미국의 어느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관객 중의 한 사람이 격분한 나머지 영화 속의 악역배우에게 권총을 발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배우가 죽을 리 없고 영화는 계속된다. 영화 속의 세계는 아무리 몰입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가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면서 엄연히 분리되어 있었던 두 개의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 세계가 바로 현대의 정보기술이 구현한 가상현실시스템이며, 여기에는 인터랙티비티라는 소통양식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그런데 이처럼 정보미디어에 의해서 구현되는 새로운 종류의 현실감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현대의 멀티 미디어환경에서 인간의 현실지각은 통합성을 잃고 다층화 한다. 20세기초에 서구회화는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적이 있다. 즉 상대성이론(A. 아인슈타인), 4차원적인 시공간 연속체론(H. 민코브스키), 무의식에 관한 정신분석(G. 프로이드), 크로노포토그래프와 시네마토그래프, 비행기의 발명 등 세계에 대한 새로운 체험과 인식은 회화로 하여금 전통적인 원근법의 확고하고 통일된 공간감을 상실케 하였고, 입체파나 미래파 그리고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보는 것처럼, 다양하면서도 일종의 환각에 가까운 리얼리티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이다.
근래의 정보혁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인식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지각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환각이라 할 만큼 왜곡되고, 장차 인간의 모든 감각이 통합된 공감각적 지각세계를 구현하고 이를 통하여 거의 모든 인간활동의 양상을 혁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상현실(VR) 테크놀러지 또한 이처럼 다층화한 리얼리티로 구성된 지각 혹은 환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계의 리얼리티는 다양한 것이며, 우리들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일정한 학습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자기변혁과 새로운 문화창조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작가 김형기의 이번 전시에는 데이터 장갑이나 고글과 같은 전형적인 VR장치가 동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시의 테마는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김형기가 구축하여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각종 미디어 장치를 통하여 위상변환을 시도하는 현실과 가상의 상호작용적인 퍼포먼스가 아닌가? 그가 내놓은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보면 19세기 영화탄생이전에 마술과도 같은 환영을 기계장치를 통하여 구현하고자 열정을 쏟았던 발명가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각기 다른 설정의 미디어 장치를 통하여. 그 때마다 현실, 가상, 외관 혹은 이미지의 다른 위상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철학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물체/오브제 혹은 외관/實像들은 상호작용적인 감응과 소통을 통하여, 실체와 허구가 교차하면서 매번 다른 종류의 인식전환을 유도한다. 요컨대 그의 작업에서 ‘가상현실’은 장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환기되는 리얼리티의 다양한 세계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작업이 전통적인 표현방법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예술가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김형기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작품에서 차지하는 관객의 위치에 있다. 예를 들어 「빅뱅」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60년대 이후 신서사이즈나 편집기와 같은 장비를 가지지 못했던 시절의 비디오 예술가들이 애용(?)하였던 피드백 효과를 쓰고 있는 데, 여기서 관객의 동작이 ‘빅뱅’을 촉발하는 방아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 같은 관객의 개입은「inter-dire」에서도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개입을 통하여 우연히 드러나는 리얼리티는 현실도 가상도 아닌 그 중간의 것이고, 찰나적으로 혹은 늘 다른 위상으로 파악되는, 개인적인 환각에 가깝다. 즉 작가가 ‘소유의 개념’으로 정의한 영상은 오브제와 이미지, 허상과 실상이 상호작용 적으로 위상을 변화시킨 결과물이며, 이 점에서 그의 작품에는 가상과 현실이 일종의 통합을 꾀하면서 교차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은 사자(messenger)처럼 그의 일부가 에너지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발언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김형기의 ‘가상현실’은 단순히 오브제나 이미지와의 인터랙션, 혹은 그것들 간의 관계에서만 촉발되는 환각이 아닌 듯 하다. 적외선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설정- 즉 작품「boite de nuit」의 공간 -에서 보듯이, 그에게 있어서 不可視 내지 형이상학적인 세계가 ‘가상’ 혹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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