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자란다, 자매들
대안공간 루프 <자매들, 우리는 커진다> 전시 관람기
김형기(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예술공학 전공 교수)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는 <자매들, 우리는 커진다> 전시를 관람하였다.
대안공간이라는 특성답게 들어가는 입구에 널브러진 전시 작품은 내게 강한 궁금증을 도발하였다. 지지대가 디자인 제품이긴 하지만 선과 조명이 눈을 거슬리게 했다. 인공 바람을 불어 주는 팬도 설치되어 있지만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테라리엄의 비(rain) 시스템은 없다. 찾아보면 식물용 LED 조명에 백색광도 있고, 알루미늄 케이스에 선 정리가 잘 된 제품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냥 ‘귀차니즘’의 끝을 보는 것 같았다. 애정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작가의 의도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잡초..라니, 이러니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고, 나도 잡초를 키워 보긴 했지만 이렇게 관찰하여 일지를 기록하고 매 순간 촬영에 공을 들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자매들, 우리는 커진다’라는 걸까?
설명을 보니 원래 아로니아 농사를 짓고 있는 이다슬 작가의 작품 <'손수 재배' 환삼덩굴 두 포기(2022)>이다. 잡초는 매우 성가실 텐데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조그만 모니터에 Vlog 영상도 보여준다. 잡초의 실물과 영상, 이미지들이 우리가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깊숙한 선입관의 폐부를 날 선 메스로 들이댄다.
사진이 벽면에 액자도 없이 각기 다른 모자이크처럼 걸려 있었는데 잡초를 촬영한 이미지이다. 그런데 데자뷔 이미지가 어긋나게 걸려 있고 교묘하게 연결된다. 게슈탈트 시지각 이론이 적용된다. 잡초이다. 디지털 조작이다. 같은 사진이 편집되어 이파리 부분을 마스킹하여 제거하고 축소 프린팅한 것이다. 디지털 이미지에서는 모순과 바램 사이의 모호한 태도에 불편한 속내를 던진다. 이 지구는 인간이 길들인 이대로가 좋은가?
배종헌 작가는 자연이나 인공 그대로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여겨진다. 사루비아 다방 프로젝트에서 전시했던 그 이전의 작업에서도 그는 벽에 나타난 흔적을 연장하는 그음을 통해 이미지를 표현했다. 공간이 주는 영감 또는 그곳의 흔적이 지배하던 그리되어야만 하는 이미지를 발굴해 살려낸다. 이번 작품에서도 인공 정원에 자란 풀들을 단순히 긁어서 표현했는데 그 풀들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이 있었다. 자연의 자연스러움.
다른 페인팅도 유화 물감을 교묘히 섞여 표현한 최소의 터치로 이루어진 회화는 무궁한 공간감과 역동성, 정적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었다. 아래만 보고 걷는 유랑자는 콘크리트의 메움 사이로 삐져나와 자라고 있는 생명에 늘 감탄하고 있는 이미지 채집자이다.
권희수 작가의 <마고 레이무숨 (2022)>은 3D 모션그래픽을 과거의 가족 비디오 영상과 편집하여 그 의미를 추측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미아샤오춘의 <Microcosm>과 Universal Everything의 <Walking City>에서 보듯이 3D Motion Graphic은 디지털 특성과 그 도구의 장점을 이용하여 텍스타일(textile)과 물성 그리고 스케일의 변이를 주물러서 관객의 흥미와 작품의 의미를 부여한다. 권희수 작가의 인공(artificiality)은 모델링에서 밀랍처럼 느껴져 사실적 묘사와 함께 +@가 있어 보였다. 불이 나서 녹아내리고 그을린 방의 상태도 그렇고..
추억과 상실, 탄생과 죽음의 메모리에 대한 윤회처럼 느껴졌으며, 섬세한 표현들이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권은비의 작품도 아날로그 위주의 인터렉션이 관객을 테이블에서 차례차례 빠져들게 했다. 이나영과 그레고리의 작품들을 보는 순간 파리의 정서를 물씬 느끼게 되었고 올드 패션의 작품이지만 아기자기하고 시대적 감성이 강하게 대치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도 다양하며 큰 장점들이 부각 된 이 전시는, 연구의 두 축인 ‘에코페미니즘’과 ‘자본주의 탐구’라는 주제로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함께 꾸민 이 전시는 9월 서울 대안공간 루프에서 연계 워크숍과 강연을 포함한 전시뿐만 아니라, 12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아트 커미션에서 전시, 2023년에는 콜파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가장 큰 두 개의 화두가 던져진 이 전시와 워크숍 그리고 출판은 다채널(multi-channel) 유기체이다. 점점 자라나길 기대한다. 그래서 이 세상의 변화로 가시화되어 자연 재생, 인간화, 평등의 실마리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