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robot ]

Projection mapping, 3D rear screen mask, unzi 2002

 아이로봇(i-robot)은 프로젝션 매핑으로 리얼리티를 극대화한 3차원 비디오 조형물이다.
좌대에 놓인 오토바이 헬멧 속에 있는 얼굴은 실사의 얼굴 영상이다.

헬멧 안의 얼굴은 3D mask rear screen 내부에서 45° 거울에 영상을 반사 시켜 프로젝션 매핑한다.


3차원 영상은 실질적으로는 2차원이라 하여야 하겠지만,
3차원 영상시스템의 장점은 2차원으로 느낄 수 없는 실제공간에서 느껴지는 
깊이 있는 화면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차원 프로젝션(Projection)으로 이루어진 3차원 얼굴 형태의 리어스크린에
동일한 얼굴의 동영상을 프로젝션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여 입체로 느낀다.

움직이는 얼굴 영상을 가진 3차원  조형물이다.
우리는 로봇이다.
미메시스(mimesis)
  인간은 왜 로봇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 존재의 위상을 고민하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예속 자의 신분으로 아이덴티파이(Identify)되기도 한다. 초인적 절대자를 그리게 되고 그에 반해 몹시 초라한 몰골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지고 지선에 다다르지 못하는 피라미드의 하부 구조에 편재한 위상으로 느껴지는, 인간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로봇에 대한 본능의 배후에는 하등동물 콤플렉스가 작용했을 법하다. 아니면 그 반대로 지배자로서의 신분 상승을 기도하는 모방심리가 그 이유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열등감만큼이나 상대적으로 우월감이 동시에 내재한다. 그래서 반대급부로서의 지배 심리가 끈질기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일 것이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동력을 이용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는 인간은 기계는 만드는 기계도 만들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절대복종할 기계 즉 로봇을 갖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는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절대자에 저항하는 본성을 지닌 인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절대복종해 줄 대상을 창조해내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예속 감을 떨쳐버리려는 절대자에 대한 반항심일 수도 있다.
도구나 장난감으로서의 로봇의 역할에서 절대복종하며 인간을 위해서만 일하는 로봇을 설정하였다. 아무튼,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인간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우리들에겐 어려서부터 로봇이란 존재가 아톰이나 로봇 태권브이처럼 늘 정의로운 친구로 묘사된다. 로봇이 주인공이면서 인간보다 우월한 심성의 소유자인 시나리오들도 많다.
 
기계 인간
  인간의 뇌와 기계의 몸을 가진 로보캅[사이보그]은 절대적인 정의로 인간을 지켜준다는 시나리오이다.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처럼 인간의 한계에 상대해 초월적 능력을 지닌 백만 불의 사나이소머즈같은 기계의 능력(?)을 도구로 삼은 예도 있다. 인간의 사랑을 받아 인간의 부분이 될 수 있는 권위가 부여된 것이다. 점점 심화되는 불신의 인간사회에서 가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이 가상의 시나리오는 실현화하려는 심리적 의지와 경제성의 논리가 맞물려 적당한 속도로 그 기술들을 발달시키고 있다. 버추얼 섹스를 꿈꾸는 이들에게서 뿐만아니라 조절 가능한 감성유희 대체 상대로의 인간 감성을 자극하는 로봇들이 개발되고 있다. 기계로 꾸며진 인공지능(人工知能, artificial intelligence, AI)을 이용하여 심리적인 감성과 지성을 스스로 발생시키고 조절하게 만드는 부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은 심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불편감을 주어 우릴 어색하게 만든다. 그 어색함이야 억지로 날려버리고 자기 최면을 걸어 죄책감마저 세뇌하게 시키겠지만 말이다.
형태의 복제에서 리얼리티가 무척 중요하다. 그 리얼리티가 사라진다면 동질감이 사라진 새로운 애완동물 같은 로봇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인간사회의 일원으로서 로봇을 사랑하게 된 인간은 인간을 꼭 닮은 로봇을 만들겠다는 욕구로 발전하여 인간을 닮은 로봇 즉 안드로이드(android)’를 만들어 낸다. 마치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내 상아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처럼 나의 창조물이 나와 같이 숨 쉬, 자고, 먹으며 나와 같아지기를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열기를 바란다. 클론(clones)을 만들게 된 것이 언뜻 보기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영화 아일랜드에서처럼 다가올 혼란은 차치하고라도, 인간은 클론을 만들기 전에 우선 클론은 과연 인간을 위해 피를 흘릴 것인가, 혹은 인간은 클론을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거기에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프로디테라는 신의 권한이라는 것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신의 권한을 인정하는 것만이 미래에 올지도 모를 재앙을 막는 길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영생이라든지 윤회를 꿈꾸는 인간들은 자손에 대한 본능만큼이나 복제의 심성이 어떤 형태로도 잔류한다. ‘을 불어넣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 복제가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은 매니저가 필요한 것이고 그 뜻(매니저의 의도)은 로봇이 알지 못하는 외부경계에 있다. 인간이 그러하듯이 .....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적인 휴머니즘이 더욱 더 느껴지기도 한다. 기계를 만들고 로봇을 창조해낸 인간이 결국 로봇에 배신당해 파멸하는 위기의 순간을 상상한다. 늘 진화하는 로봇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인간은 결국에 올 파국의 시나리오 시뮬레이션한다. 시간을 거스르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미션을 뛴 로봇을 파견하게 되는 이유이다. 할리우드 영웅 로봇이 구해준다는 이 시나리오는 대단한 성공으로 후속작들을 내보냈었다.
그러나 인간의 공상처럼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인간의 외로움과 변덕스러움을 로봇이 받아 줄는지 의문이다. 심리적으로 로봇의 반란 또는 배신 등, 불안의 요소를 표현한 영화, 만화나 소설이 대부분이다. 물론 기승전결 구도 속의 대립 상황을 만들어 극적인 전환의 요소이지만 무의식이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배신해본 자만이 다가올 배신을 남들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인간은 신을 배신하여도 다시 받아들여지는 것은 창조자 또는 절대 진리의 한 몸통에 있는 신의 복제로서의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완벽한 로봇
 우리에겐 스스로 천한 인간이 아무도 없다.
실재로 인간은 완벽한 로봇이다.
늘 멀리서 사람들을 로봇 쳐다보듯이 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은 숭고의 지경까지 이른다. 그 어느 부속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고 자율적이며 완벽한 인간이다. 창조인지도 모를 인간의 완벽한 구조는 어떻게 이다지도 미래(?)지향적으로 진화되어 온 것인가?
DNA는 습관과 자연도태에서 선택되어 기록 보전 향상된 것이라고 말하기엔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있다. ‘매트릭스처럼 가상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닌, 이 살과 정신이 느껴지는 존재감은 로봇이 느끼지 못할 감동이다. 그래서 인간이 존경스럽다. 나의 마음이 이렇듯 살아 움직이듯 변덕스러운 것마저 사랑스럽다. 이 사랑스러움의 긍정적인 감성이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작가노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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