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상상력의 모자이크 김 형 기
신 보 슬
 
각종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전문 아트센터. 언뜻 우리 미디어아트의 상황은 대단히 풍족한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전시를 기획을 하려고 하면, 작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디어 아트 현장은 너무나 빈곤하다. 이제 막 무엇인가 해보려는 ‘어린’ 작가들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고, 미디어아트 1세대 작가들은 이제 그 생생한 상상력을 많이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 형 기. 작가 김형기는 몇 안 되는 한국의 미디어 아트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43살이라는 물리적인 나이에 비해 그가 젊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러나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실제로 젊다는 느낌을 받는다. 젊다는 건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욕과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형기는 젊은 작가이다. 그와 만나 함께 학교 캠퍼스를 걸어 나오는 짧은 시간에도, 그는 쉬지 않고 많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 그는 참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베어난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이렇다 할 김형기표 트레이드마크는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작품 하나하나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개별 작품은 살아 있으되, 그것을 김형기라는 이름으로 구속하지 않는 힘. 그것이 작가 김형기의 개성이다.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관객의 집중력을 놓치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쉽게 접근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최근 미디어 아트는 작품의 내용보다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라는 형식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작품의 첫인상은 강렬하지만, 쉽게 식상하게 된다. 맥루한은 예술가가 사회의 안테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오늘날 많은 미디어작가들은 테크놀로지의 하수인이 되어 자신의 메시지를 잃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주제에 몰입하되 현학적이지 않은, 여전히 내용으로 고심하는 그의 작업은 더욱 매력적이다.
언어와 소통은 김형기 작업의 주요 모티브이다. 이것은 아마 오랫동안 다른 언어권에서 살면서 겪었던 그의 경험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5개의 스틸사진, 5개의 스피커에서 무한히 반복되어 나오는 <아, 이, 우, 에, 오>, <대면대화>가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대면대화>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중복적으로 사용되는 언어가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는 모습을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대화는 일상적으로 무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화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텍스트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표정이나 몸짓, 그리고 변화되는 상황을 말 그대로 공감각적으로 동원해야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 현란한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인터렉티브 작품과 비교한다면, 두 개의 스크린이라는 아주 간단한 구조이지만, 일단 스크린 사이에 관람객이 개입되는 순간 관람객은 복잡한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스크린 사이에서 관람객은 대화의 방해물이 되는 느낌을 받게 되고, 어떻게는 대화에 동참하려는 무의식적 욕구에 의해 두 스크린상의 대화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관객이 발견하는 것은 절대로 동일하게 재생되지 않는 대화의 상황. 대화의 단절이다. <inter-dire>는 커뮤니케이션을 다르게 읽고 있는 변주이다. 스크린 상의 인물은 수화로 이야기를 나눈다. 적외선 센서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관람객이 지나가게 되면, 수화의 내용이 말로 표현된다. 보는 언어와 듣는 언. 전혀 다른 언어 체계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블랙홀>은 다른 주제의 작품이다. 아크릴 반구에 3차원 프로젝션 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둠을 모성으로 규정한다. 세상이 아직 세상이기 이전에 어둠만이 존재했고, 그 안에서 빛이 시간이 잉태되었다. 그리고 생명이 잉태되었다. 어둠의 깊은 곳에 한 여자의 몸이 있다. 마치 태반의 아기처럼 웅크린 그 몸. 여자의 몸이 다시 생명을 잉태한다. 일종의 반복과 순환 같은 블랙홀. 있음과 없음, 존재와 비존재라는 대단히 철학적인 주제를 작가는 시적으로 나타낸다.
최근 김형기는 미디어아트 공연예술과 야외 미디어설치전시에 빠져 있다. 전시라는 형태로는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관객과 상호작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진정한 상호작용이란 현장성이고,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으면서, 하나로 호흡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는 작품과 관객의 반응이 작가에게 도달하는데 시간차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는데 비해, 그러나 공연은 즉각적으로 관객의 반응을 수용할 수 있다. 지금 그는 멀티미디어 공연물을 기획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설레인다고 했다. 야외 미디어 설치전시는 화이트 큐브를 답답해하던 그가 찾은 또 하나의 탈출구이다. 한 때 자신의 젊음이 거쳐하던 캠퍼스 곳곳에 미디어 작품들을 숨겨(?) 놓는 것이다. 굳이 환경예술이라 말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작품을 담아보고 싶어 한다. 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형식적 한계 때문에, 야외 전시가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닐 텐데도, 그래서 더 재밌다 며 웃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모습. 그는 정말 젊은 것 같다.
김형기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머브리지 사진을 가지고 했던 <공전궤도>에서 내년에 보일 미디어아트 공연예술까지. 그가 걸어왔던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는 길은 작가 김형기가 그리는 모자이크 그림이다. 그 상상력의 모자이크가 어떤 그림으로 나타날 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그가 그리는 그림이 밋밋하고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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