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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것은 아름답다
한겨레  기사전송 2008-06-10 19:10 
[한겨레]
움직임 또는 움직이는 것은 아름답다. 예술의전당(02-580-1300)에서 7월6일까지 열리는 ‘오늘의 한국 미술-미술의 표정’ 전은 움직임이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매질이며 나아가 아름다움 자체일 수 있음을 일깨운다.
유명 현대 한국미술가 46명 ‘모둠전’
잘나가는 작가 46명의 작품을 형태, 빛과 색채, 움직임, 공간 등 4개의 범주로 나눠 전시하는 ‘미술의 표정’ 전 가운데 ‘움직임’ 모둠의 작품들이 가장 눈에 띄는 까닭은 움직임을 아름다움의 범주로 갈라낸 기획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인간은 움직이는 것을 아름답다고 인식한다는 것.
변시지의 <태풍>, <폭풍>에서 그의 붓질은 온통 사선으로 비껴 있다. 구름과 나무와 지붕, 그리고 말의 갈기와 인간의 머리 터럭에 바람의 형상이 들어 있다. 전강옥의 조각 <삐딱하게 서 있기>. 정물들은 한쪽으로 기운 널뛰기 발판 또는 넘어지기 직전의 탁자에 놓여서 금방이라도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쓰러진 와인병은 구르다 잠깐 멈춘 것처럼 보인다. 움직임의 드러남은 ‘비스듬’이다. 에너지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이동하므로 그럴 수밖에.
사진·조각·회화 통해 ‘낯설게 보기’
움직임은 시각에서 빚어지는 잔상으로 감지된다. 거꾸로 진하고 흐릿한 동일상이 공존할 때 움직임으로 파악한다. 권두현, 경성현의 작품들은 환각적이다. 사진기의 조리개를 좁히고 시간을 길게 주어 얻은 듯한 그들의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지럼증이 일어난다. 경성현은 취한 눈에 비친 잔상이어서 토사물 같은 색채와 함께 멀미까지 부른다. 쳇바닥 철망을 이용한 박상태의 <비마>는 잔상의 조각적 변주다.
움직임에는 당연히 시간이 끼어든다. 구자영의 인터랙티브 비디오는 관객의 움직임을 무한 반복되는 작은 거울상, 또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크고 작은 글자의 명암으로 보여준다. 실제 움직임과 비디오의 상은 0.5초 정도의 시간 차가 있어 동작을 객관화하며 동시에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게 만든다. 요철을 거꾸로 뒤집은 이용덕의 조각 속 인물은 관객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또 움직임에 따라 표정을 달리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이 움직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함진의 <찌끄러기 인간>은 바닥과 벽 사이 2㎝ 남짓 크기. 껌·담배꽁초 등으로 만든 작은 인물들은 관객을 아예 엎드리게 만든다.
‘짧은 순간의 존재’ 시공간성 돋보여
김형기의 <플립>은 애니메이션처럼 16분의 1초마다 상을 바꾸어 완벽한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을 포기하고 2분의 1초 또는 3분의 1초로 늘려 움직임의 미분상태를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날아가는 화살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을 재현한다.
결국 움직임이 아름다운 것은 짧은 동안의 존재에 대한 동정이 아니겠는가. 김아타의 사진 <온에어 프로젝트>에는 건물만 있을 뿐 움직이는 사람들은 먼지처럼 뿌옇게 존재한다. 짧은 존재여서 아름다워야 한다는 메시지다. 조습의 비디오 작품은 움직임의 부작용을 환기한다. 극복하기 어려운 높은 에너지 차이는 때로 더러운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미친소와 촛불처럼.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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