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김형기 unzi KIM, 金亨基 Solo video installation, 2000.05.04 - 05.28

빛으로 채워지는 정보와 영상의 시대인 21세기에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가상현실"을 예술작품으로 이루어낸 작가가 여기 있다.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던 김형기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연구실을 뛰쳐나왔다, 
어린시절부터 간직해 왔던 예술에 대한 갈망이 현실을 뒤로한 채 그를 파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드디어 1986년 파리국립미술대학인 보자르에 당당히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유학 시절, 뉴욕이나 런던 보다 다분히 보수적인 파리화단에서 김형기 역시 타블로 작업에 머물러 있었다.
순수하고 시적인 작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평면 작업들이었다. 
그러나 늘 새로움을 갈구하던 그는 자신의 페인팅 작업에 싫증을 느꼈고 캔버스라는 평면의 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 
1988년에 제작된 무광택 모노크롬 작업인 "tente(천막 또는 '시도하다'라는 3인칭 여성형) 에서 그의 이러한 욕망을 잘 읽을 수 있다. 
그는 70cm 가량의 정방형 캔버스 위에 텐트의 머리처럼 화면 앞으로 구조물이 돌출 되도록 막대기로 캔버스 천을 앞으로 돌출 시켰었다. 
정면에서 보면 단지 흑색 모노크롬 작업이지만 옆의 프로필은 뾰족하게 튀어나온 구조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공간에 대한 인식 작업은 8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시지각에 대한 개념을 담은 오브제 작업으로 구체화 되어갔다 : 
예를 들어 불어의 한 문장을 소리가 같은 단어로 대치하여 이를 투명 아크릴 위에 써서 그림자만이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거나 두 단어를 공간상에서 분리하여 재결합시키는 등, 이때부터 문자(의미와 본질)와 음성인식에 대한 사고를 꾸준히 발전시켜 나갔다. 
91년 작가는 파리 보자르 지하 전시공간에서 열린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 지하라는 전시공간은 빛과 어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당시 출품작들은 이후 발표되는 작품들의 모태가 되었다: 
"celestre(?)밤 하늘"이라는 작품은 지하의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전구들이 마치 우주의 행성들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데, 이 공간은 상식적으로 거리감과 공간감이 존재하는 3차원의 입체적 공간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관객들이 고정된 문 어귀에서만 관찰할 수 있도록 하여 3차원의 공간이 2차원으로 보이게끔 유도하였다. 
즉 이 방은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볼 때 느끼는 우주라는 공간이 평면의 스크린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때부터 김형기의 작업들은 "어둠=공간, 빛=물질" 이라는 과학적이면서도 다분히 음양이론과 같은 동양철학에 근본을 두고 발전해 나아갔다. 
즉, 공간이란 개념은 원래 어둠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빈 공간을 하나의 물질인 빛으로 채워 나간다는 원리, 완벽한 어둠은 존재할 수 있어도 완벽한 빛의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실제 작가는 거울의 앞뒤면을 이용해 큐빅을 만드는 두 개의 작품, 빛을 배제하는 거울 면이 밖으로 향하는 큐빅과 알전구를 넣은 채 거울 면이 안쪽으로 향하는 가상의 빛 공간(관객은 실제로는 광원을 보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실로 남아있는)으로 이루어진 큐빅을 구상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00년, 이번 "가상현실"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 역시 이러한 개념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된 것들이다. ● 우선 이번에 소개되는 신작들은 모두가 관객의 참여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인터액티브 한 작품들이다. 
①「Ombre des ombres」그림자들의 그림자 - 공간, 어둠, 빛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이전시의 전체적인 개념을 알리는 작품으로 첫째 날의 오프닝 퍼포먼스와 함께 완성되는 작품이다.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녹색의 3개의 조명이 진자운동을 하면서 조명 앞을 지나는 무용수(오프닝 이후에는 관객)의 움직임을 벽면에 다양한 색의 그림자로 만들어 낸다.
이 그림자들을 각 3개의 측면에서 촬영하여 전시장에 다시 3개의 모니터로 상영하여 실재의 장면을 재현한다. 
그리고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도 자신이 배우가 되어 이 조명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데 참여하게 된다.
②「춤추는 뱀」- "가상현실" 이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는 작품중의 하나이다. 
박스형 암실 속 중앙에 좌대(조각품 올려놓는 백색의 150cm x 30cm x 30cm의 구조물)를 놓고 그 위에 촛불을 설치한다. 
그리고 그 초 주위에 좌대 연장의 벽(철판; 외벽 백색, 내벽 검은 색)을 50cm 높이로 설치하고, 각각의 벽에 촛불 높이로 4개의 돋보기를 설치하여 옵스큐라(카메라 원리)처럼 사면의 벽에 움직이는 촛불의 영상이 확대되어 영사된다. 
그리고 운이 균일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보들레르의 " Le serpant qui danse" (춤추는 뱀)라는 제목의 시 구절을 따서 상이 맺히는 곳에 글자를 거꾸로 새겨 둔다. 그리고 4개의 스피커를 통해 이 시의 낭송을 4개의 채널로 듣게 된다.
 이때 초의 흔들리는 상은 시의 제목처럼 뱀의 구불거리는 모습과 일치한다. 
 즉, 이 작품은 동일한 공간과 동일한 시간 속에서 가상이지만 현실을 느끼는 작품인 것이다.
4군데 벽에 프로젝션된 상들은 결국 실재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 우리 눈이 가지고 있는 감도의 해상도로 보여지는 비디오 영상이라 할 수 있다. 
실체가 존재하는 가운데 보여지는 4분할의 도식적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 영상은 도립 허상으로 소유의 개념이다. 
여기서 소유의 개념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은 사자(messenger)처럼 그의 일부가 에너지로 다가오는 것이고, 우리의 메모리에 디지털화 되는 원형이 되는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 것은 시간의 이동이 없는 것이며, 움직임이 없는 동안의 영원인 것이다."라고 작가는 전문적인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③ 「inter-dire」서로-말하다 - 2층 전시장에 전시된 이 작품은 인간의 지각 중 80%를 차지하고 있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각장애자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수화로 대화를 나눈다. 
즉 수화는 절대적으로 시각을 필요로 하며, 곧 이는 이미지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관객이 양쪽 화면에 영사되고 있는 두 인물의 앞을 지나가면서 화면을 가리게 되고 이 둘의 의사를 방해하게 된다. 
즉 제목 "interdire"는 불어의 "금지하다"라는 사전적 풀이다. 
그리고 inter는 그리스 어원으로 "상호간"을 의미하며 dire는 "말하다"라는 불어의 동사이다. 
인터액티브 interactive가 요구하는 쌍방간의 의사소통, 교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작가는 인터액티브의 가장 직접적인 간단한 방법인 "대화"를 소재로 삼아 가장 큰 공명의 효과를 얻어내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④「night shot」의 공간 - 이 작품은 위의 inter-dire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시각 차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빛을 차단시킨 하나의 방에 관객이 들어서면 후각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와 함께 사방에 흩어져 있는 스피커를 통해 일상적인 삶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리고 관객들이 어둠 속에서 헤매는 모습들이 적외선 카메라에 담겨 방 밖에 설치된 화면으로 상영이 되는, 일종의 몰래 카메라 이다.
" 즉, 인간의 시 지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존재를 보여줌으로써 시 지각의 불완전성과 물체(존재의 알림)의 메시지가 곧 직접적인 시공에서 이루어지는 교류임을 암시한다." 
⑤「빅뱅」- 인터액티브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스크린 앞을 관객이 지나가면 물결이 치고 있던 화면이 갑자기 폭발하듯 파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관객이 사라지면 화면은 우주의 행성들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다시 잔잔하게 소용돌이친다. 
비디오에 입력되는 영상들이 실시간(real time)으로 영사기를 통해 큰 화면에 비추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프로젝션된 이미지가 동시에 비디오카메라에 재 입력되고 이 이미지가 실시간에 프로젝션 되는 일종의 피드백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데 중요한 이 피드백 시스템을 잘 활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비디오와 영사기가 서로 소통하고 있는 공간에 불연 듯 나타난 관객의 개입이 마치 우주의 대 폭발을 일으키듯 화면을 소용돌이치게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가장 단순한 설치로 그야말로 인터액티브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상현실은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상상의 세계를 현실과 같이 만들어내며 인간의 모든 감각인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 인위적으로 창조된 세계에 몰입되어 자신이 바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가상의 공간은 관찰자에게 그 세계 안에서 직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며 모든 것이 상호작용(인터액티브)적인 관계에 있다."라는 사전적 풀이조차도 아직은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예술가나 과학자들이 미래를 예측하며 그것을 현실화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사람들이듯이, 작가 김형기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들이 요구하는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내고 있는 것 같다. 
정보화 시대에 맞는 이미지의 전달 방식은 이제 예술가들에게도 과학자의 전문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도의 길을 걸었던 작가 김형기는 그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자신의 전문지식을 잘 결합시켜 새 세기가 요구하는 예술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완벽한 만남으로 엮어 나아갈 21세기, 앞으로 작가 김형기의 "빅뱅"과 같은 대 활약을 기대해본다. 
■ 공근혜
가상현실과 환각

                                   이원곤

  예를 들어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내용에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상현실이 아닌가”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주목을 끌고 있는 가상현실(VR)은 어디까지나 독자나 관객이 아닌 ‘참여자로서 얻을 수 있는 현실감’을 핵심으로 한다. 1930년대의 미국의 어느 영화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관객 중의 한 사람이 격분한 나머지 영화 속의 악역배우에게 권총을 발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배우가 죽을 리 없고 영화는 계속된다. 영화 속의 세계는 아무리 몰입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가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이처럼 서로 모순되면서 엄연히 분리되어 있었던 두 개의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 세계가 바로 현대의 정보기술이 구현한 가상현실시스템이며, 여기에는 인터랙티비티라는 소통양식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그런데 이처럼 정보미디어에 의해서 구현되는 새로운 종류의 현실감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현대의 멀티 미디어환경에서 인간의 현실지각은 통합성을 잃고 다층화 한다. 20세기초에 서구회화는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은 적이 있다. 즉 상대성이론(A. 아인슈타인), 4차원적인 시공간 연속체론(H. 민코브스키), 무의식에 관한 정신분석(G. 프로이드), 크로노포토그래프와 시네마토그래프, 비행기의 발명 등 세계에 대한 새로운 체험과 인식은 회화로 하여금 전통적인 원근법의 확고하고 통일된 공간감을 상실케 하였고, 입체파나 미래파 그리고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보는 것처럼, 다양하면서도 일종의 환각에 가까운 리얼리티의 세계로 인도했던 것이다.
근래의 정보혁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인식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지각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환각이라 할 만큼 왜곡되고, 장차 인간의 모든 감각이 통합된 공감각적 지각세계를 구현하고 이를 통하여 거의 모든 인간활동의 양상을 혁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상현실(VR) 테크놀러지 또한 이처럼 다층화한 리얼리티로 구성된 지각 혹은 환각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계의 리얼리티는 다양한 것이며, 우리들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일정한 학습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자기변혁과 새로운 문화창조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작가 김형기의 이번 전시에는 데이터 장갑이나 고글과 같은 전형적인 VR장치가 동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시의 테마는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김형기가 구축하여 보여주는 리얼리티는 각종 미디어 장치를 통하여 위상변환을 시도하는 현실과 가상의 상호작용적인 퍼포먼스가 아닌가? 그가 내놓은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보면 19세기 영화탄생이전에 마술과도 같은 환영을 기계장치를 통하여 구현하고자 열정을 쏟았던 발명가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각기 다른 설정의 미디어 장치를 통하여. 그 때마다 현실, 가상, 외관 혹은 이미지의 다른 위상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철학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물체/오브제 혹은 외관/實像들은 상호작용적인 감응과 소통을 통하여, 실체와 허구가 교차하면서 매번 다른 종류의 인식전환을 유도한다. 요컨대 그의 작업에서 ‘가상현실’은 장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환기되는 리얼리티의 다양한 세계이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작업이 전통적인 표현방법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예술가들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김형기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작품에서 차지하는 관객의 위치에 있다. 예를 들어 「빅뱅」이라는 작품에서 그는 60년대 이후 신서사이즈나 편집기와 같은 장비를 가지지 못했던 시절의 비디오 예술가들이 애용(?)하였던 피드백 효과를 쓰고 있는 데, 여기서 관객의 동작이 ‘빅뱅’을 촉발하는 방아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 같은 관객의 개입은「inter-dire」에서도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개입을 통하여 우연히 드러나는 리얼리티는 현실도 가상도 아닌 그 중간의 것이고, 찰나적으로 혹은 늘 다른 위상으로 파악되는, 개인적인 환각에 가깝다. 즉 작가가 ‘소유의 개념’으로 정의한 영상은 오브제와 이미지, 허상과 실상이 상호작용 적으로 위상을 변화시킨 결과물이며, 이 점에서 그의 작품에는 가상과 현실이 일종의 통합을 꾀하면서 교차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모든 것은 사자(messenger)처럼 그의 일부가 에너지로 다가오는 것”이라는 발언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김형기의 ‘가상현실’은 단순히 오브제나 이미지와의 인터랙션, 혹은 그것들 간의 관계에서만 촉발되는 환각이 아닌 듯 하다. 적외선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설정- 즉 작품「boite de nuit」의 공간 -에서 보듯이, 그에게 있어서 不可視 내지 형이상학적인 세계가 ‘가상’ 혹은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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